주식잡담
펌글) 흙수저의 삶. 그리고 간절함이 준 선물.
진홍앵무PGV
168 조회수
2022.06.08

너무 목적지만 향해 달려오다 보니

조금은 스스로를 뒤돌아 보며

감사함도 느끼고 리프레쉬도 하고 싶어서 글써봄.

이글이 단 한명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주길 바라면서


-

우선 나는 흙수저로 태어나 눈떠보니

집앞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보였고

바다, 산이 있는곳이였음

할게 없어 강과 바다에서

수영하고 물수제비만 주구장창 해대서

지금도 대충 던져도 15번 이상은 튕김ㅋ 진짜임..

집앞 바다에 고동이랑 성게 같은건

좀만 수영해서 바위에 가면 많았기에

잠자리채 들고 잡아다가 엄마한테 줬었는데

엄마가 좋아하시길래

거의 매일 재미삼아 성게랑 고동 이런거

잡아다가 엄마한테 주면서 놀이삼아 지냈음

(이때가 5~8살쯤)

뱀사냥, 벌집사냥, 개구리구워서 먹어보고

이런게 일상이였음


무튼 초등학교를 6곳 다녔고

중학교를 3곳 다녔음. 매년 이사를 다녔음.

아버지 직업이 변변치 않았고

'우리집'이 없었기에 1~2년 전세로

아빠 일거리에 따라 이사를 많이 다님.

도배일도 하셨고 치킨집도 했었고

지금은 없지만

그당시 탕수육만 전문으로 파는 체인도 있었는데

이것도 했었고 별에별거 다했음

아빠가 몸으로 고생을 많이해서

관절염이 매우 심해졌었고 다리가 안굽혀지며

잘 걷지도 못하고 걸을때 펭귄처럼 걸었었는데

이때문에 장애등급 판정까지 받으심

물론 지금은 행복해지셔서 인지

뛰어다니실정도로 건강이 좋아지심

무튼 엄마가 닭다리 튀기고

아빠가 배달나가고 했었는데

가끔은 초등학교 1학년인 내가

전화로 주문도 받았고

근처에는 내가 치킨들고 직접 배달해주기도함ㅋ

그래도 부모님이 너무 서로 사랑하시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남편 내조만 생각하고, 자식들 생각만 하며

불평 불만없이 조용히 남편 믿고 따르기만 했던

엄마가 대단했던거 같음

힘든상황속에 별에별일 다하며

다리 장애인 될때까지

온갖 고생 다하면서 가정을 지키려한

아빠도 그렇고..

어릴적에 친구가 스키장을 다녀왔다길래

나도 아빠한테 스키장에 가고싶다고 했음.

근데 말없이 집에서 나가더니

몇시간뒤에 돌아와서는

베란다에서 망치질하며 뭘 만들고 있는거임

몇시간뒤에 엄마랑 동생이랑 나 다같이

동네 뒷산 계곡

(밀양 얼음골 계곡?쪽이였던거 같음)

얼어있는곳에 가서

아빠가 만든 얼음위에서 타는 스케이트 같은건데

무릎꿇고 양손에 못같은 막대기로

밀면서 타는 그거 2개를 만들어 왔던거임

너무 재밌었고 즐거웠음

무튼 가난했지만 아빠는 이런식으로

본인이 할수있는 최선을 다하고 사셨던거 같음

그래서 가족간 더 애틋해졌던거 같고

가족끼리 더 끈끈했었던거 같음.

이런 아빠와 엄마 아래에서

동생과 내가 삐뚫어지기 보다는

우리집의 가난을 일찍이 받아들이고,

둘다 초등학교 정도때 부터 철들었던거 같고

언젠가 좋은일이 생기겠지란 마음으로 살아왔음.

부산기장, 부산월내, 울산북구, 울진, 구미

인천, 부천, 서울 신월동 등등

초등학교 3학년때는 하도 이사를 다니니

어릴적 친해진 친구들과의

헤어짐에 하루종일 울기도 했고

너무 힘들었지만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이 힘들어서 그런거니까

스스로 체념하며 이사가면

어차피 헤어질 친구들

친구 안사겨야지란 생각으로 그냥

대충 무덤덤하게 교내생활하며 지냈음

그래서 어릴적 친구가 1명도 없음..

어릴적 추억 공유하고 지내는 사람들보면 부러움

다행인건 힘든상황을 참고 견디며

이겨내는 모습을 부모님을 통해 보며 자라왔기에

나 역시도 성격이 부정적이기 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려 했으며

그래도 활발하고 밝고 긍정적이여서

내가 얼른 성공해서 '우리집'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빨리 성공해야지!! 라는 생각을

10살쯤부터 하기 시작했음.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해준 유년시절

유일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태어나 처음 접했던 게임

바람의나라 라는 게임속 친구들이 많았었고

게임속의 이친구들이 너무 소중했으며

오프라인 세상보다는

게임속 캐릭터가 내 자신과도 같았고

이 게임이 나에게 주는 행복은 상상이상이였음(10~11살 당시)

현실세계에선 가난했지만

게임속 세상에선 나름 렙도 높았고

게임속 돈도 많았었기에ㅎㅎ

너무 즐겁고 빨리 학교 끝나고 이게임만할 생각에

하루하루 지내면서 도대체 이게임이 뭐길래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는걸까 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게임을 했음

게임속에서 아이템 거래하며 차익도 남기고,

사기도 쳐보면서ㅈㅅ..

초등학생이라는 어린나이였지만

이때부터 자본주의를 배운거 같음.

물론 게임도 돈이없어서

엄마한테 돈받아서 한게 아니라

게임 아이템이랑 그당시 자이젠이였나 그거랑

바람의나라 10시간, 30시간 이용권 같은

쿠폰이 있었는데

이 쿠폰을 게임 아이템이랑 교환해서 했던거임.


무튼 지방에서 살다가 중학교쯤 되어서는

서울 신월동으로 오게 되었음

반지하에 화장실에선 하수구?

냄새가 나는 집이였지만

서울이라는거에 너무 좋았었고

심지어 신월동에서 롤러브레이드 타고

목동까지 혼자

산책? 하고 온적도 있었음

솔직히 서울와서 빌라 반지하였지만

(보증금 20년전 1천에 월세 20이였던걸로 기억함

아빠가 지금 60넘었으니까 대충 45살에 전재산이

1천만원이라는 소리임 물론 이것마저 대출인지 뭔지는 나도모름)

그래도 서울이니까

집과 동네가 제일 마음에 들었음ㅋ

사실 알사람은 알겠지만 신월7동인데

달동네이고 언덕높은 산밑에 있었음. 국립과학연구소? 가까웠음.

그래도 그 이전까지 살았던 집이 더 안좋았고

서울이 아닌 시골, 지방이였기에

그냥 서울 타이틀만으로도 우리집이 좋아보였고

동네가 미국 베버리힐즈 수준으로

좋다는 감정을 느꼈음


뭐 유년시절 얘긴 이쯤하고

이러한 환경탓에

항상 '우리집' 그리고 '가족'이라는

단어가 항상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음

가족간에 엄청 애틋했던거 같음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

내가 빨리 성공해서

부모님 고생 그만시키고

동생 맛있는것도 많이 사주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음.

고등학교때 부턴 알바도 했고

게임 아이템 팔아서 현금화도 용돈도 하고

대학들어가서도 시급 제일 쎘던

학교 근처 식당에서 배달알바도 하며

등록금 내면서 지냄

배달하다가 학교앞 신호등 대기중에

빵빵거리길래 옆에 쳐다보니

같은 신입생 친구가 창문열고

'야 너 배달하냐? 시켜먹을게 고생해'

대충 이런얘길 했었는데

옆엔 여자친구가 타고 있었음 개부럽..ㅋ

신호바뀌고 슝 가는데 아우디였음

저세끼 금저수네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와 저세끼 개멋있다!!!!!!!! 이런생각하며

나도 나중에 성공해서

저런차 타고 학교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튼 얼마 지나지 않아 휴학하고

인턴같은걸로 회사에 취업을 하면서 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음


나는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함

현실을 탓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거지.

그래도 우리 흙수저들은 금수저와 다르게

아주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

가난속에서 느낀 '절실함'과 '간절함'

그리고 '더이상의 바닥은 없다' 라는거임

돈의 소중함 역시 어릴때부터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살게됨.

이것 역시 증여를 통해 배우는 금수저들의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가난을 통해 배우는 아낌으로써의 자본주의를

우리도 어릴때부터 배우고 살았던 거임.

초등학교 시절

300원짜리 맥도날드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매우 맛있었는데

친동생하고 가서 1개 사서

서로 나눠먹으면서 서로 남아있는거

더 먹으라고 양보하며

형제간 더 각별해졌던거 같음

종종 어린애 2명이 와서

항상 1개를 사먹다 보니

어느순간부터는 일하는 나이좀 있는 아줌마(매니저였던거 같음)가

거의 2배, 3배 크기로 줘서

받자마자 땅바닥에 떨어진 적도 있었음.

그리고 피시방가면 지금 꾸이맨같은거

1개를 낱개로 200원에 팔았었는데

이것도 1개 사서 나는 1/3 조각 떼서 먹고

동생은 2/3 조각 큰거 주면 먹다가

동생도 형아 먹어라 내 배부르다

이러면서 나한테 양보하려했음

가난하면 가난속에서 나름의 행복과

긍정적 영향들이 있음.

물론 이걸 못느끼고 현실을 부정만 하면서

내 자신과 가정환경을 탓하며

삐딱하게 가는 경우도 많은데

삐딱하게 가는것과, 좋은길로 가는건

동전의 앞뒤처럼 한끝차이인거임.

궁극적으로 절실함과, 간절함 속에

'긍정적 사고',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함


이 가난을 내가 극복하겠다라는

절실함, 독기 그리고 야망!

마치 비닐하우스 온실속의 이쁜 화초보다는

아스팔트 돌 사이에서 피어난 잡초들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절실한 만큼 더 노력하고

지내다 보면 어느순간 발전되어 있더라.

사실 나는 지금도 침대가 없음.

살수 있지만 그래도 바닥에서잠.

이유는 어릴때부터 침대가 없었고

바닥에 요깔아놓고 자는게 익숙하고 편하니까

지금도 그렇게 자는데

가끔 놀러가서 침대에서 자면 좋긴하더라

행복을 느끼곤함.

부자들은 못느끼는 행복을

나는 땅바닥에서 자는걸 통해 느끼는거임.

이처럼 나는 항상 긍정적인 성격탓에

뭐든 좋게 받아들였던거 같음.


그리고 회사다니며 좋은 대우를 받았었지만

내가 나와서 차리면 더 잘할거 같아서

그만두고 지금은 준비중에 있음.

이것 역시도 자신이 당장 가진걸 포기하는게(고액연봉, 보너스)

남들은 어려운 일이였겠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매일매일이

더이상 잃을게 없었고,

그렇기에 오늘만 산다는 마인드였기에

그냥 항상 미래의 두려움이 없이 살았고

뭐 알아서 어찌저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때려치고 나옴.

회사다닐때 연봉 2억에 보너스 1~3억이였음.

하지만 지금 더 잘범.

물론 나오고 1년간은 손가락만 빨았음.

그래도 불안한 마음 가진적 없었음

왜냐.

0원 벌더라도 어릴적 힘듦보단 나은 삶이니까.


난 30대 중반이고

사회생활하며 돈을 모았는데

돈 모으자마자 전재산 다 부모님 집사는데 썼음

수도권에 40평 집 부모님 사드림

그만큼 집에 대한 결핍이 강해서 가능했던거 같음

집사드리고 나니 통장에 1500만원이 끝이였음

그래도 너무 행복해 하셨기에

잘한일이라 생각했었고

더 큰좋은집에 우리가족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거 같음


난 서울 강남권에 아파트 전세로 혼자 자취중임

그리고 대출없이 강남권 아파트

살수있을 정도의 자산이고 대출 없고

차에는 관심이 없어 한 8년된차 타고다님

명품 사치욕심 없음 내껀 안사지만

엄마는 뭐 거의 모든 브랜드 명품들 다 사드려봄

부모님 한달 생활비

400만원 정도 내카드로 쓰고 계심.

이제 향후 목표는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매우 좋아하시는데

해외에 우리가족이 내집처럼

들락날락 거릴수있는

팬션같은 집하나 사는게 목표임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우리 흙수저들아

뭘해도 우리가 어릴적부터 경험했었던

'밑바닥' 보다는

지금 당장 이순간이 더 나은 삶일거고,

우리가 경험했던 밑바닥은 더이상 없다는거.

사소한 거에도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면서

너무 미래를 생각하고, 내일을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막막해 하기 보다는,

그냥 당장 오늘만 산다는 마음으로

오늘에 집중하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다보면

내일 내일이 더 발전되어 있을거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1년 뒤에는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거.

좋은생각 많이하면서

긍정적으로 화이팅 하길

항상 행복하고 좋은일만 가득하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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